상담하면서 상속포기를 해도 없어지지 않는 빚이 있습니다. 라고 얘기해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배우자를 잃은 분이 채무 관련 서류 뭉치를 들고 오셨는데, 채무가 모두 정리되는 지 궁금해 했습니다. 채무 목록을 한 줄씩 짚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손가락을 멈춰야 합니다. 여기부터는 안 됩니다, 라고 말씀드려야 하니까요.
작년에 맡았던 사건이 그랬습니다.
제조업을 하시던 남편분이 연말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아내분과 자녀 셋이 남았고, 빚은 5억이 넘었습니다. 재산이라고는 살던 아파트 지분 절반, 자동차 지분 절반, 여기저기 흩어진 예금과 보험 해약환급금을 다 긁어모아 1,800만 원 남짓, 그리고 공장에 있는 기계 지분이 전부였습니다.
한정승인과 상속포기로 상속인을 정리하고 상속재산파산까지 갔습니다. 절차 자체는 무리 없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5억이 넘던 그 빚 중에 파산으로 정리된 몫은 절반이 되지 않았습니다.
5억 중 절반도 정리되지 않은 이유, 연대채무
상속포기든 한정승인이든, 이 제도들이 다루는 건 돌아가신 분의 빚입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실무에서는 이 당연한 게 자주 흐려집니다.
부부가 함께 사업을 하셨다면 채무 목록에 두 종류가 섞여 있습니다. 남편분 혼자 지신 빚이 있고, 부부가 나란히 이름을 올린 빚이 있습니다. 뒤엣것은 아내분 본인의 빚이기도 합니다. 남편분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아내분의 이름이 채무 목록에서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 채무 목록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 채무 | 파산으로 정리되었나 |
| 남편분 명의 은행 대출, 카드대금, 캐피탈 | 정리됨 |
| 부부 공동사업자로 진 은행 연대채무 | 아내분 몫은 그대로 남음 |
| 법인 대출에 대한 연대보증 | 아내분 몫은 그대로 남음 |
| 공유 부동산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채무 | 아내분 몫은 그대로 남음 |
연대채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나눠서 반씩 갚는 게 아니라, 각자가 전부를 갚을 의무를 집니다. 채권자는 둘 중 아무나 붙잡고 전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 그 사람 몫이 파산으로 정리되어도, 남은 사람의 의무는 조금도 줄지 않습니다.
보증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파트를 부부가 각 2분의 1 절반 씩 갖고 있었으니 세를 놓을 때도 두 분이 함께 임대인이었습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임대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보증금을 절반만 받을 이유가 없지요.
남편 몫이 정리되면 아내에게 달라지는 세 가지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연한 질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파산이 아내분의 빚을 대신 갚아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몇 가지가 달라집니다.
우선 채권자가 아내분 한 사람만 남습니다. 남편분 몫이 정리되기 전에는 채권자들이 상속인 전원을 상대로 움직입니다. 자녀들에게까지 연락이 갑니다. 그게 끊깁니다.
그리고 아내분이 갚아야 할 금액의 윤곽이 잡힙니다. 상속재산파산 절차에서 관재인이 채권을 하나하나 조사하기 때문에, 근거가 흐린 청구는 그 과정에서 걸러집니다.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버티는 것과, 5억 중 내 몫이 얼마인지 알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마지막으로 아파트가 정리됩니다. 이건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장을 돌려 거래처 채무를 갚고, 채권자목록을 변경하다
여기서부터가 제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입니다.
아내분은 남편분이 돌아가신 뒤에도 공장 문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공동사업자였으니 사업자등록도 거래처도 그대로 있었고, 그걸 붙잡고 계속 돌리셨습니다. 수입이 있으니 거래처에 밀린 것부터 하나씩 갚아 나가셨고요.
그래서 파산 절차 중반에 채권자목록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신청서를 낼 때는 남편분과 아내분이 함께 연대채무로 지고 있던 거래처 채무를 전부 목록에 올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절차가 진행되는 사이에 아내분이 그 채무들을 상당 부분 정리하셨습니다. 채권자들에게 확인을 받고 채권자목록 변경신고를 해서 그 항목들을 덜어냈습니다.
파산이 빚을 없앤 게 아니라, 아내분이 일해서 갚으신 겁니다.
파산재단에 들어간 아파트 지분 절반을 아내가 사들이다
아파트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남편분 지분 절반은 파산선고와 동시에 파산재단에 들어갑니다. 등기부에 파산선고가 기입되고, 관재인이 팔아야 하는 재산이 됩니다. 그 집에 살고 있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공유지분은 경매로 넘기면 제값을 받기 어렵습니다. 관재인 입장에서도 제값 받고 파는 게 목표이지 누구한테 파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절반을 갖고 계신 아내분이 사시는 걸로 협의가 됐습니다. 이 부분은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문제는 돈이었는데, 사업을 이어가며 들어온 수입에 그동안 모아두셨던 돈을 보태서 지분 값을 치르셨습니다. 법원 허가를 받아 매각이 되고 파산선고 등기가 지워지면서, 아파트는 온전히 아내분 명의가 됐습니다.
부부 공동사업이라면 상속포기 전에 확인할 것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상속재산파산은 돌아가신 분이 남긴 몫을 마무리하는 절차입니다. 살아 있는 배우자가 자기 이름으로 진 빚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사업을 하셨다면, 상속 절차를 시작하기 전에 채무 목록부터 두 갈래로 갈라보셔야 합니다. 어느 쪽이 얼마인지 알아야 그 다음 계획이 나옵니다. 남편분 몫만 정리되고 나면 내 앞에 뭐가 남는지, 그걸 감당할 수 있는지, 감당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요.
가끔 상속포기만 하면 다 끝나는 줄 알고 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게 알고 계셨다가 몇 달 뒤 은행에서 연락을 받으면 훨씬 힘들어집니다. 처음부터 정확히 아시는 편이 낫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파산 종결까지 사망일로부터 스무 달쯤 걸렸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내분은 그 사이에도 공장을 돌리고 계셨고, 끝날 무렵에는 살던 집도 지키셨습니다.
빚이 많다고 다 잃는 건 아닙니다. 무엇이 정리되고 무엇이 남는지 처음에 정확히 갈라두면, 남는 쪽을 감당할 방법도 같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