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포기 2026. 08. 28 | 작성자: 대표법무사 여환동

상속포기, 자녀·손자녀에게 넘어가는 빚

아버지가 남긴 빚이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고 상속포기 신고를 마친 뒤, 몇 달 지나 자녀 앞으로 채권자의 독촉장이 날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포기했는데 왜 아이한테 오느냐"는 문의가 사무소로 자주 들어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속포기는 빚을 없애는 절차가 아니라, 나를 상속인 명단에서 빼는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빠지면 그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순위 사람이 채우게 됩니다.


즉 자녀가 상속포기를 해서 손자녀에게 상속인 지위가 넘어간 것입니다.


상속포기의 법적 효과

상속을 포기한 사람은 상속이 개시된 때로 소급하여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봅니다(민법 제1042조).


즉 재산도 채무도 받지 않지만, 그 대신 상속인의 자리가 비게 되어 다음 순위자에게 상속권이 이전됩니다.


법정상속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민법 제1000조, 제1003조).

순위상속인
1순위직계비속(자녀, 자녀가 없으면 손자녀)
2순위직계존속(부모, 조부모)
3순위형제자매
4순위4촌 이내의 방계혈족
배우자1·2순위와 공동상속, 1·2순위가 없으면 단독상속

배우자는 별도의 순위를 갖지 않고, 1순위 또는 2순위 상속인과 함께 공동상속인이 됩니다. 1·2순위가 없으면 3순위로 넘어가지 않고 단독으로 상속인이 됩니다.


배우자가 있는데 형제자매와 함께 공동상속받게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겠죠.

사례별로 누가 상속인이 되는가

자녀 중 일부만 포기한 경우

포기한 자녀의 상속분은 배우자와 포기하지 않은 다른 자녀에게 귀속됩니다(민법 제1043조). 배우자가 없다면 다른 자녀(형제자매)에게 비율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경우 다른 자녀가 있으니까 손자녀에게는 상속권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자녀 전부가 포기했고 배우자가 살아 있는 경우 — 바뀐 실무

자녀 전부가 포기했고 배우자가 있는 경우, 만일 손자녀들이 있다면 종전에는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3다48852 판결).


그래서 손자녀들까지 줄줄이 상속포기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3. 3. 23.자 2020그42 전원합의체 결정으로 이 판례를 변경하여,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손자녀는 공동상속인이 되지 않습니다.


이 결정으로 손자녀·직계존속이 불필요하게 별도의 포기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부담이 상당 부분 정리되었습니다.


다만 이는 배우자가 생존해 있고 포기하지 않은 경우에 한하는 것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배우자가 없거나, 배우자까지 함께 포기한 경우

이때는 민법 제1043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속권은 다음 순위로 그대로 내려갑니다.


손자녀 → (없으면) 부모·조부모 → (없으면) 형제자매 → (없으면) 4촌 이내 방계혈족


배우자가 이미 사망했거나 이혼한 상태에서 자녀들만 포기한 사안, 또는 온 가족이 함께 포기한 사안에서 손자녀·조카에게 채무가 넘어가는 일이 실제로 발생합니다.


미성년 손자녀도 예외가 아닙니다.


후순위 상속인의 3개월은 언제부터인가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은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해야 합니다(민법 제1019조 제1항).


후순위 상속인의 경우 이 기간은 선순위 상속인의 포기로 자신이 상속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계산합니다. 따라서 사망 사실만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곧바로 기간이 지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뒤늦게 통지를 받았더라도 대응할 여지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지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법원으로 부터 소장부본이나 승계집행문 발급 통지서를 송달받고 나서 알게 되는 경우입니다.


또한 미성년자였던 상속인을 위해 2022. 12. 13. 민법 제1019조 제4항이 신설되어, 미성년자일 때 단순승인한 것이 되었더라도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점도 알아 두셔야 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쓰는 방식

상속인이 여러 명이고 재산·채무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면, 상속인 전원이 포기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가 포기하는 방식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이 상속재산의 범위에서 청산을 담당하게 되므로, 상속관계가 그 단계에서 마무리되고 후순위 친족에게까지 채무가 내려가는 상황을 차단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정승인을 1명이 함으로써 청산절차가 간명해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청산을 상속재산파산 신청으로 할 때에도 신청인은 1명만 하면 족하므로 한정승인을 여러명이서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신고 전 확인해야 할 사항

사망진단서·가족관계등록사항별 증명서로 가족관계와 상속순위를 먼저 확정했는가
배우자의 생존 여부, 자녀의 수, 손자녀·직계존속·형제자매의 존재를 모두 확인했는가
상속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 중 미성년자가 있는가
예금 인출, 보험금 수령, 차량이나 부동산 명의 이전 등 상속재산을 처분하거나 사용한 사실이 있는가(단순승인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3개월의 기산점이 언제인지 정리했는가

상속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포기하느냐"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누가 상속인으로 남느냐" 입니다.


가족관계를 전체적으로 놓고 순위를 그려본 뒤, 누가 포기하고 누가 한정승인을 할지 설계해야 뒤늦게 손자녀나 형제자매에게 독촉장이 가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상속재산과 채무의 규모가 불분명하거나, 상속인이 여러 명이거나, 미성년자가 포함되어 있다면 신고 전에 상속순위부터 함께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개별 사안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정을 확인한 뒤 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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