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을 함께 살았는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권리가 없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림을 꾸리고 재산을 일구었는데, 혼인 관계 서류 한 장이 없다는 이유로 상속인 명단에서 빠지는 경우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헌법재판소도 2024년 3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주지 않는 현행 민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2020헌바494 등).
다만 길이 전부 막힌 것은 아닙니다. 상속권이 없다는 것과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고, 특히 사실혼이 사망으로 끝났는지 생전에 갈라섰는지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사실혼 배우자가 놓이는 법적 자리, 그럼에도 열려 있는 길, 그리고 생전에 해 둘 수 있는 대비를 정리해 드립니다.
상속권은 혼인신고를 한 배우자에게만 있습니다
「민법」 제1003조는 피상속인의 배우자를 상속인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배우자를 뜻합니다.
함께 산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주변에서 부부로 알고 있었는지는 상속권의 유무를 가르지 않습니다.
사실혼 배우자가 놓치는 것은 상속권만이 아닙니다. 상속인이 아니므로 상속재산분할심판을 청구할 당사자 자격도 없고, 유류분을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상속등기나 예금 지급 청구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습니다.
혼인신고 한 장이 갈라놓는 것
몇 해 전 진행한 상속재산분할 사건이 이 차이를 잘 보여 줍니다.
의뢰인은 재혼한 배우자였습니다. 남편이 사망하면서 상속인은 전혼 자녀 세 명과 의뢰인, 모두 네 사람이 되었는데, 남은 상속재산은 남편 명의의 차량 한 대뿐이었습니다.
문제는 전혼 자녀들과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차량을 정리하려면 상속인 전원의 서류가 필요한데, 협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정법원에 상속재산분할심판을 청구해 차량을 의뢰인 단독 소유로 분할받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상대방들의 협조 없이도 법원의 심판으로 명의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의뢰인이 청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혼인신고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실혼 관계였다면 사정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 구분 | 법률상 배우자 | 사실혼 배우자 |
| 상속인 지위 | 있음 (민법 §1003) | 없음 |
| 상속재산분할심판 청구 | 가능 | 당사자 자격 없음 |
| 유류분 | 가능 | 불가 |
| 연금·유족급여 | 가능 | 가능 (사실혼도 배우자로 인정) |
| 주택 임차권 승계 | 가능 | 일정 요건에서 가능 (주택임대차보호법 §9) |
같은 사람이 같은 세월을 살았어도, 서류 한 장의 유무가 이 표의 좌우를 가릅니다.
그래도 열려 있는 길이 있습니다
상속권이 없다고 해서 곧바로 포기하실 일은 아닙니다. 다음 네 가지는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 방법 | 내용 | 조건 |
| 사실상혼인관계 존부확인의 소 | 법원의 판결로 사실혼 관계의 존재를 공적으로 확인 | 상대가 이미 사망했다면 검사를 상대방으로 제기(가사소송법 §24) |
| 유족연금·유족급여 |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산재보험 등에서 배우자로 인정 | 각 법령이 사실혼 배우자를 배우자에 포함 |
| 특별연고자 재산분여 | 생계를 같이했거나 요양간호를 한 사람에게 상속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분여(민법 §1057의2) | 상속인이 한 사람도 없을 때만 가능 |
| 주택 임차권 승계 | 함께 살던 임차주택의 임차인 지위를 승계 | 상속인이 없거나, 상속인이 함께 살지 않았던 경우 |
여기서 놓치기 쉬운 것이 특별연고자 분여의 조건입니다. "생계를 같이했으면 받을 수 있다"고만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은데, 이 제도는 상속인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만 해당 됩니다.
고인에게 자녀나 부모, 형제자매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분여를 청구할 자리가 없습니다.
사망으로 끝난 경우와 생전에 갈라선 경우는 다릅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사실혼도 생전에 관계를 정리하는 경우에는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공동으로 재산을 형성한 실질이 있으면 법률혼의 재산분할 규정이 유추적용된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입니다.
문제는 사망으로 사실혼이 끝나는 경우입니다. 종래 판례는 이때에는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앞서 본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이 부분은 판단을 받지 못한 채 각하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이와 관련해 한 걸음 나아간 판단을 내놓았습니다(2026. 6. 5. 선고 2026므10105 판결). 요지는 이렇습니다.
재산분할 제도의 취지와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재산분할의무는 당사자 일방이 사망하면 그 상속인들에게 승계된다. 이는 사실혼 관계가 해소된 뒤에 상대방이 사망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므로, 사실혼 관계에 있던 사람은 사망한 전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인들을 상대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두 경우를 나누어 보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 상황 | 재산분할 청구 | 상대방 |
| 생전에 사실혼을 해소 | 가능 | 상대방 본인 |
| 사실혼을 해소한 뒤 상대방이 사망 | 가능 (2026므10105) | 상대방의 상속인들 |
| 함께 살던 중 상대방이 사망 | 인정되지 않음 | — |
제 생각엔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헤어진 뒤에 상대가 사망하면 청구할 수 있고, 끝까지 함께 살다가 사별하면 청구할 수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입법으로 정리되어야 할 지점이라고 봅니다.
다만 지금 상담을 받으시는 분에게 중요한 것은 본인의 사안이 이 표의 어느 칸에 놓이는지입니다. 헤어진 시점과 사망 시점의 선후만으로 결론이 갈리므로, 관계가 언제 어떻게 끝났는지를 먼저 정리해 보셔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대비는 생전에 해 두는 것입니다
위의 방법들은 모두 사후에 다투는 길입니다. 시간과 비용이 들고, 결과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늘 생전 대비를 먼저 권해 드립니다.
- 혼인신고 — 가장 간단하고 가장 확실합니다. 다른 모든 방법을 합친 것보다 효과가 큽니다.
- 유언 — 혼인신고가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유언으로 재산을 남길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은 넘을 수 없습니다.
- 생전증여 — 확실하지만 증여세와 유류분 반환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 보험 수익자 지정 — 보험금은 지정된 수익자의 고유재산이므로 상속재산과 별개로 다루어집니다.
- 공동명의 — 함께 마련한 재산은 처음부터 지분을 나누어 등기해 두는 것이 분쟁을 줄입니다.
정리하며
-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도 현행 제도를 합헌으로 보았습니다.
- 상속권이 없다는 것과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다릅니다. 연금과 유족급여, 임차권 승계는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 특별연고자 분여는 상속인이 한 사람도 없을 때만 가능합니다. 이 조건을 모르고 기대하셨다가 실망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 사실혼이 언제 어떻게 끝났는지가 결론을 가릅니다. 생전에 헤어진 뒤 상대가 사망한 경우에는 상속인들을 상대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가장 확실한 대비는 생전에 해 두는 것입니다. 사별한 뒤에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그 전에 할 수 있었던 일보다 적습니다.
오래 함께 사신 분과의 관계를 서류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자료가 남아 있는지, 상대방의 상속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택할 수 있는 길이 달라지므로, 사실관계를 먼저 정리한 뒤에 방법을 고르시는 것이 순서입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려우시다면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