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그 집을 저에게 물려주신다고 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 그 집을 파셨더군요. 유언은 없어진 것인가요?"
아버지가 작성한 부동산을 주겠다면 작성한 유언장에 적힌 부동산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경우입니다.
결론은 처분했다는 사정만으로 유언이 철회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유언자가 그 재산을 처분하면서 매도대금처럼 그 재산을 대신하는 재산에 유언의 효력이 미치도록 할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면, 유언은 그 범위에서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도 목적물을 처분한 사정만으로 유언 철회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한 바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언이 철회되는 세 가지 경우, 처분행위와 유언의 '저촉'을 판단하는 기준, 그리고 유언을 남기실 때 미리 정해두어야 할 사항을 정리해 드립니다.
유언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습니다
민법은 유언자의 최종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철회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 구분 | 내용 | 근거 |
| 임의철회 | 유언자는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써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으며, 철회할 권리를 포기할 수 없음 | 민법 제1108조 |
| 저촉에 의한 철회 | 전후의 유언이 저촉되거나 유언 후의 생전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면 그 저촉된 부분의 앞선 유언은 철회한 것으로 봄 | 민법 제1109조 |
| 파훼에 의한 철회 | 유언자가 고의로 유언증서나 유증의 목적물을 훼손하면 그 부분의 유언은 철회한 것으로 봄 | 민법 제1110조 |
첫 번째는 유언자가 스스로 철회의 뜻을 밝히는 경우이므로 다툼이 적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유언자가 생전에 한 행위가 유언과 어긋난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지점입니다.
유언장에 "이 집을 장남에게 준다"고 적어두고 그 집을 팔았다면, 이것을 유언을 거두어들인 것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저촉'은 어떤 경우를 말하는가
민법 제1109조의 '저촉'은 단순히 내용이 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앞선 유언을 그대로 두고서는 뒤의 생전행위가 유효하게 존속할 수 없는 관계를 저촉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저촉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다음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 유언자의 의사가 유언의 일부만 거두어들이려는 것이었는지
- 아니면 그 유언 전체를 나눌 수 없이 통째로 철회하려는 것이었는지
- 처분한 재산과 유언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형식적으로 "재산이 없어졌으니 유언도 없어졌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동산을 팔았다면 — 최근 대법원의 판단
2026년 6월, 대법원은 유언효력확인청구 사건에서 이 쟁점을 다루었습니다(2024다260146).
유언자가 유언의 목적물인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한 사안이었습니다. 원심은 매도로써 유언이 철회되었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이 주목한 것은 처분대금의 행방이었습니다. 유언자가 부동산을 팔면서 그 매매대금 중 상속재산이 되는 부분에 관하여 유언의 효력이 미치도록 할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 처분했다는 사정만으로 유언이 철회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 집을 주겠다"는 유언이 "이 집을 판 돈을 주겠다"는 뜻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집을 팔았다는 사실만으로 유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갈림길이 되는가
실무에서 판단이 갈리는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정 | 철회로 볼 여지 |
| 처분대금이 별도 계좌에 남아 있고 사용되지 않은 경우 | 여지 작음 — 대상재산에 유언 효력이 미칠 의사를 인정하기 쉬움 |
| 유언자가 치료비·생활비로 대금을 소비한 경우 | 사안에 따라 다름 — 남은 범위에서만 문제됨 |
| 처분 후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는 새 유언을 한 경우 | 여지 큼 — 전후 유언의 저촉에 해당 |
| 수증자와 다투다가 처분한 사정이 드러난 경우 | 여지 큼 — 유언을 거두어들일 의사로 볼 수 있음 |
| 유언증서 자체를 찢거나 태운 경우 | 여지 명확 — 파훼에 의한 철회(민법 제1110조) |
결국 유언자가 왜 그 재산을 처분했는가가 관건입니다. 그리고 유언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이므로, 남은 자료로 그 의사를 되짚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유언을 남기실 분이 해두어야 할 것
이런 분쟁은 유언장을 조금만 더 촘촘하게 써두면 대부분 피할 수 있습니다.
- 재산이 바뀔 경우를 미리 정해두십시오. "이 부동산을 처분하는 경우 그 대금 역시 같은 사람에게 귀속한다"는 문구 한 줄이면 다툼의 소지가 크게 줄어듭니다
- 재산을 처분했다면 유언장을 다시 쓰십시오. 상황이 바뀌었는데 예전 유언장을 그대로 두면 남은 가족이 해석을 놓고 다투게 됩니다
- 철회할 생각이라면 분명하게 밝히십시오. 새 유언장에 "○년 ○월 ○일자 유언은 철회한다"고 적어두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 유언증서를 여러 통 만들지 마십시오. 어느 것이 최종본인지 다투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유언장을 받으신 분이 확인할 것
반대로 유언장에 이름이 올라 있는데 그 재산이 이미 처분된 경우라면, 다음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 처분 시점과 유언 작성 시점의 선후 — 유언이 먼저인지 처분이 먼저인지부터 확인합니다
- 처분대금의 흐름 — 어디로 들어가 어떻게 쓰였는지가 핵심 자료입니다
- 이후 작성된 다른 유언장이 있는지 — 전후 유언이 저촉되면 뒤의 것이 우선합니다
- 처분 경위에 관한 정황 — 치료비 마련인지, 다른 자녀에게 주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다툼이 예상된다면 유언효력확인의 소를 통해 유언의 효력 범위를 확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리하며
유언과 처분행위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언자는 언제든지 유언을 철회할 수 있고, 그 권리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 유언 후의 생전행위가 유언과 양립할 수 없음이 분명한 경우에 그 부분의 유언이 철회된 것으로 봅니다
- 목적물을 처분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언 철회를 단정할 수 없으며, 처분대금 등 대상재산에 유언의 효력이 미칠 의사가 있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 분쟁을 막으려면 유언장에 재산이 바뀔 경우의 처리를 미리 적어두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유언은 작성하는 것보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손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부동산을 정리하셨거나 재산 구성이 달라지셨다면, 예전에 써둔 유언장이 지금 뜻과 맞는지 한 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미 분쟁이 생긴 상황이라면 유언장 문구만 보고 판단하기보다, 처분 경위와 대금의 흐름까지 함께 검토해 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