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는 "한정승인 신고가 수리됐다는 심판문을 받았습니다. 이제 뭘 하면 되나요?"
한정승인은 상속인의 책임 한도를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로 한정해 줄 뿐, 빚을 정리해 주는 절차가 아닙니다.
한정승인이 수리되면 상속인은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안에서만 책임을 집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재산을 어떤 채권자에게 얼마씩 나눠줄 것인지, 즉 청산은 상속인이 직접 해야 합니다.
채권자가 두세 곳이고 남은 재산이 예금뿐이라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아파트 공유지분이나 사업용 기계처럼 혼자서는 처분할 수 없는 것들이고, 채권자가 열 곳을 넘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정승인 이후의 청산이 왜 어려운지, 상속재산파산은 어떤 경우에 선택하는지, 그리고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진행됐는지 정리해 드립니다.
한정승인 이후 상속인이 직접 해야 하는 일
민법은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에게 청산 절차를 그대로 맡깁니다.
| 단계 | 근거 | 상속인이 해야 하는 일 |
| 채권자 공고·최고 | 민법 제1032조 | 한정승인한 날부터 5일 내에 공고, 신고기간은 2개월 이상 |
| 변제 거절 | 민법 제1033조 | 신고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변제를 거절할 수 있음 |
| 배당변제 | 민법 제1034조 | 신고한 채권자와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 채권액 비율로 변제 |
| 우선권 보호 | 민법 제1034조 단서 | 담보권자 등 우선권 있는 채권자의 권리는 그대로 |
| 부당변제 책임 | 민법 제1038조 | 공고를 빠뜨리거나 순위를 어겨 변제하면 상속인이 손해배상 책임 |
주목하실 곳은 마지막 줄에 기재된 내용이며, 상속재산을 "잘못 나눠주면 그 책임은 상속인이 집니다."
한정승인을 했으니 안심하고 남은 예금으로 급한 카드대금부터 갚았는데, 뒤늦게 나타난 다른 채권자가 "내 몫을 다른 채권자에게 줘버렸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정승인으로 망인의 재산범위내로 채무를 변제하도록 제한된 책임의 범위를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재산을 현금으로 바꾸는 일 자체도 문제입니다. 공유지분은 상속인 혼자 팔 수 없고, 사업용 기계는 지분만 떼어낼 수 없으며, 비상장주식은 살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속재산파산은 어떤 절차인가
상속재산파산은 사람이 파산하는 절차가 아니므로 상속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고인이 남긴 상속재산을 하나로 묶어, 그 자체를 파산시키는 절차입니다. 법원이 파산관재인을 선임하고, 관재인이 재산을 환가해 채권자들에게 법이 정한 순위와 비율에 따라 배당하는 것입니다.
| 항목 | 내용 | 근거 |
| 파산원인 | 상속재산으로 상속채무를 완제할 수 없을 때 | 채무자회생법 제307조 |
| 신청권자 | 상속채권자, 유증을 받은 자, 상속인, 상속재산관리인, 유언집행자 | 제299조 |
| 신청기간 | 원칙은 상속개시일부터 3개월. 다만 한정승인이나 재산분리가 있었다면 그 청산이 끝나기 전까지 | 제300조 |
| 절차비용 | 법원이 예납을 명함 | 제303조 |
| 간이파산 | 재산이 적으면 간소화된 절차로 진행 | 제549조 |
| 종결 | 최후배당과 계산보고를 마치면 종결결정 | 제530조 |
신청기간을 특히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원칙은 사망일부터 3개월입니다. 고인의 재산과 빚을 파악하기에도 빠듯한 기간입니다. 그런데 한정승인을 해두면 이 기간에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한정승인은 재산의 청산이 끝나기 전까지는 언제든 파산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한정승인은 상속재산파산으로 가는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상속인 입장에서 파산 절차가 갖는 이점은 분명합니다.
- 재산의 처분과 배당을 파산관재인이 맡으므로 부당변제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 공유지분처럼 혼자 팔 수 없는 재산도 법원 허가를 통해 환가할 수 있습니다
- 채권자들이 신고한 채권을 관재인이 조사하므로, 근거 없는 청구를 걸러낼 수 있습니다
- 절차가 종결되면 청산이 끝났다는 점이 공적으로 확정됩니다
실제 사건 — 상속파산을 내다보고 한 한정승인
제조업을 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가족은 배우자와 자녀(미성년자 포함) 셋이었습니다.
고인이 남긴 재산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 부부가 절반씩 나눠 갖고 있던 아파트의 지분 2분의 1
▶ 자동차 지분 2분의 1
▶ 여러 금융기관에 흩어진 예금과 보험 해약환급금 약 1,800만 원
▶ 비상장 법인의 주식, 그리고 공장에 있는 성형기와 프레스의 지분 2분의 1
반면 빚은 5억 원을 넘었습니다. 은행 대출과 카드대금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부가 공동사업자로 함께 지고 있던 연대채무, 법인 대출에 대한 연대보증,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채무까지 얽혀 있었고, 채권자는 열 곳을 넘었습니다.
이 재산을 배우자가 혼자 정리할 수 있었을까요. 아파트는 절반만 내놓을 수 없고, 기계도 절반만 떼어 팔 수 없습니다. 열 곳이 넘는 채권자의 채권액 비율을 계산해 배당하는 일 역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처음부터 상속재산파산을 목표로 염두에 두고 한정승인을 했습니다. 한정승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3개월이라는 신청 기간을 피하고, 한정승인 절차를 통해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을 정확히 특정하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한정승인 심판이 수리된 뒤 약 2개월 만에 상속재산파산을 신청했고, 진행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시점 | 진행 |
| 신청 | 상속재산파산 신청서 제출 |
| 약 열흘 뒤 | 법원의 비용예납명령 — 예납금 50만 원 |
| 신청 약 4주 뒤 | 파산선고, 파산관재인 선임, 간이파산으로 진행 |
| 선고 직후 | 고인 공유지분에 파산선고 기입등기 |
| 선고 약 5개월 뒤 | 법원 허가를 받아 아파트 지분 매각 |
| 선고 약 13개월 뒤 | 최후배당과 계산보고를 거쳐 파산종결 |
사망일부터 헤아리면 약 20개월, 파산 신청일부터는 약 14개월이 걸렸습니다. 채권자집회는 재산 환가가 마무리될 때까지 다섯 차례 속행됐습니다.
절차가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배우자가 한 일은 자료를 제출하고 기일에 출석한 것뿐이었습니다. 재산을 팔고 채권자를 상대하고 배당표를 짜는 일은 모두 파산관재인의 몫이었습니다. 한정승인만으로 남아 있었다면 그 전부가 배우자의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정리하며
한정승인과 상속재산파산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관계가 아닙니다. 한정승인으로 책임의 한도를 정하고, 상속재산파산으로 실제 청산을 마무리하는 순서로 이어지는 절차입니다.
특히 다음에 해당한다면 한정승인 단계에서부터 파산까지 내다보고 설계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 채권자가 여러 곳이고 그 규모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
▶ 부동산 공유지분, 사업용 자산, 비상장주식처럼 혼자 처분하기 어려운 재산이 있는 경우
▶ 고인이 사업을 했고 연대채무나 보증채무가 섞여 있는 경우
▶ 채권자들의 독촉이 이미 시작된 경우
반대로 재산이 예금 몇 백만 원뿐이고 채권자도 한두 곳이라면, 예납금과 시간을 들여 파산까지 갈 이유는 없습니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재산의 성격과 채권자의 수에서 갈립니다.
한정승인 신고 기한은 상속개시를 안 날부터 3개월입니다. 이 기간을 넘기면 선택지 자체가 사라집니다. 고인의 빚이 재산보다 많아 보인다면, 혼자 판단하기보다 재산의 구성부터 함께 살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