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남긴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유족분들이 가장 먼저 고민하시는 게 있습니다.
상속포기를 해야 할까요, 한정승인을 해야 할까요?
두 제도 모두 망인이 남긴 빚으로부터 상속인을 지켜주기 위한 제도라는 점은 같지만, 실제 효과와 그 이후에 해야 할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은 이 둘의 차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상속포기,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게 된다
상속포기는 말 그대로 상속 자체를 거절하는 겁니다. 망인이 남긴 재산도 받지 않고, 빚도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인 것입니다.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 개시 시점(사망 시점)으로 소급해서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되기 때문에, 망인의 재산과 채무 모두에 대해 완전히 남남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기억하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상속포기는 그 효과가 다음 순위 상속인에게 그대로 넘어간다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 배우자와 자녀가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그다음으로 망인의 부모님, 그다음은 형제·자매가 차례로 상속인이 됩니다. 형제·자매까지 전부 포기하면 이번엔 조카나 삼촌·고모 같은 3촌 친족이 상속인이 되고요.
이분들마저 포기하면 마지막으로 사촌(4촌)까지 상속인이 넘어갑니다. 그야 말로 빚의 대물림인것이죠.
민법상 상속권은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만 인정되고, 그 안에서도 촌수가 가까운 사람(3촌)이 먼저 상속인이 되며 그들이 전부 포기해야 다음 순위(4촌)로 넘어가는 구조입니다.
실제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딸이 세 분 계셨고, 모두 상속포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뒤늦게 "우리가 포기하면 그 채무가 다음 순위인 할머니나 삼촌, 고모한테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어요.
급하게 다른 가족분들과 상의해서, 채무가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 상속포기 심판 청구에서 한정승인 심판 청구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아래 이미지 참고 하기)
상속포기 전에 이 승계 구조를 미리 알았다면 더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었을 사례였습니다.

한정승인, 받은 만큼만 갚는다
한정승인은 상속 자체는 받아들이되, 물려받은 재산의 범위 안에서만 빚을 갚겠다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받은 것 이상은 갚지 않겠다"는 조건부 승인이에요. 예를 들어 볼게요.
망인이 은행 예금 1,000만 원을 남기고, 빚은 5,000만 원을 남겼다고 해봅시다. 한정승인을 하면 상속받은 재산 1,000만 원만 채권자에게 지급하면 되고, 나머지 4,000만 원은 갚지 않아도 됩니다.
왜 굳이 복잡한 한정승인 제도를 따로 뒀을까
상속포기는 절차가 비교적 간단한데, 왜 한정승인이라는 더 복잡한 제도를 따로 만들어 뒀을까요? 여기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망인이 재산을 남겼지만 그보다 빚이 더 많은 경우, 누군가는 남은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청산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모든 상속인이 그냥 상속포기만 해버리면 재산 정리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이걸 막기 위해 4촌 이내 상속인 중 누군가는 한정승인을 통해 청산절차를 밟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 취지입니다.
그래서 한정승인은 심판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채권자에게 공고·통지를 하고 재산을 나눠주는 청산절차까지 마쳐야 완전히 마무리됩니다.
이 청산절차를 소홀히 하면 형식적으로는 한정승인을 받았어도 특정 채권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으니, 심판문만 받고 안심하지 마시고 그다음 단계까지 꼭 챙기셔야 합니다.
3개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갑니다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모두 상속 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는 공통 기한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날은 사망일과 같지만, 후순위 상속인이라면 앞선 상속인들이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별도로 3개월을 계산합니다.
이 3개월, 정말 생각보다 빨리 지나갑니다.
돌아가신 직후 정신없는 와중에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로 재산 조회부터 신청하시고,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해야 할 상속인이 누구인지 범위를 특정한 다음 서둘러 절차를 진행하시는 게 좋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으신다면,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전문가와 먼저 상담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